개인
2025-06-17 ~ 2025-06-22
한혜령
무료
031-243-3647
감정의 형상화_ 순응과 저항 사이, 감정의 조율
박초혜(홍익대학교 미술학과 박사)
인간은 집단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때 한 개인이 집단 내에서 명백히 외부인으로 존재하는 경우, 개인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공동체의 요구와 기준을 선명히 알게 된다. 이를 계기로 몇몇은 사회가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개인에게 수많은 기준을 강요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로 이러한 강요는 일종의 폭력으로 집단의 안위와 편의를 위해 허용된다.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다수가 가하는 폭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들은 이러한 폭력이 가장 위험한 폭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만장일치의 폭력이야말로 폭력을 증폭시키지 않고 종결짓는 유일하게 ‘좋은 폭력’임을 알았다.” 그가 주장한 희생 제의(提議)는 한국 사회에도 존재해왔다. 시대마다 요구된 보편적 기준은 필수적인 조건으로 작용하여 강제되었다. 본능적으로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또는 따를 수 없는 이들)은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자들에게 불안을 야기하는 방해 요소로 인식되었다.
한혜령 작가는 이러한 사회 속의 긴장 관계를 민감하게 느낀다. 현대에도 계속되는 다수를 위한 기준은 작가의 내적 감정과 고민을 일으켜 작품으로 표현된다. 일정한 붓터치로 형성된 추상 형태는 작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녀의 붓질은 과감히 나아갈 듯하지만, 일정 길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정해놓은 규격을 반복해서 긋는다. 화면의 여백에 비해 작은 면적으로 드러난 작가의 감정은 다양한 색감에도 불구하고 화면에 녹아들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나선형 곡선은 붓질과 마찬가지로 다소 일정한 규격을 가짐으로써 순응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다른 형태와의 조합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작품 <Relation>(2020)에서 보이는 형태는 타액, 고등 동물의 침 속에 들어있는 아밀레이스(Amylase)이다. 작가에게 ‘침’이란 분노에 찬 상대가 의도치 않게 내뱉은 액체로 타인의 기준과 의견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뜻한다. 해당 형태는 작품 <Relation>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가 점점 그녀의 감정 형태와 어우러진다. 이는 마치 그녀의 억울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기준까지 포용하겠다는 작가의 심리를 표현하는 듯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감정을 자제하며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순응시킨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비난받아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녀의 선택은 그녀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사회는 끊임없는 타인과의 조율로 공동체를 유지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억압된 규율을 사회를 위한 배려 형태로 규정하며, 타인에게 맞추는 태도를 미덕으로 여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것은 하나의 윤리로 인식하고 배려와 타협은 선행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독립된 자아보다 관계의 조율을 통한 자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그녀의 순응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배려이다. 그리고 그녀의 배려는 갈등을 최소화하여 관계의 안정을 유지하고 사회를 지속하는 방법이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억눌린 감정이 아닌 조율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한혜령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내적 고민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동시에 절제함으로써 자신을 사회의 일부로 만드는 유연함을 선보인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작가가 선보인 내적 타협의 과정은 ‘이뤄낸 유토피아(Utopia)’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시피 작품은 그녀 안에 존재하는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을 ‘정돈되지 않음’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작품 <움푹함에 아늑한 자리>(2023)는 강한 어둠을 통해 보편적 가치에 억압된 작가의 감정을 나타낸다. 추상 선은 폭력적인 어둠 안에서 그사이를 비집고 나오듯이 아밀레이스와 섞이며 공존한다. 이후 작품은 선홍빛을 보이며 밝은 명도를 지닌 배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흘러내릴 듯 완전히 흘러내리지 않는 감정의 선은 나선형 형태와 서로 다른 색을 지니며 도무지 하나로 융합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작가는 비조화를 통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의 감정은 억압과 순응에 대한 내적 고민으로써 규범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결론적으로 한혜령 작가의 작품은 우울이나 저항의 서사가 아닌, 온전한 유토피아도 아닌 그저 살아가기 위한 작가의 내면적 실천이다. 작품을 통해 드러난 억압은 폭력에 대한 고민을 상기시키고, 작가의 순응적 태도는 배려와 조율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어느 누가 타협하고 순응하려는 그녀의 노력을 욕할 수 있을까? 사회는 개개인의 타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부드러울 수 있었고, 누군가의 순응으로 인해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작가가 경험한 조율의 과정을 감상함으로써 ‘나는 지금 어느 기준에 살고 있으며, 어떤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자신만의 사회적 균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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